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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영화 감상문, 리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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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있었다고?

디즈니 플러스에서 보게 된 영화다. 고려양(한복)이 중국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등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 됐었다고 한다. 영화를 다 보고 검색해서 알게 된 내용이다. 영화 보기 전에 선입견을 갖기 싫어 정보를 먼저 찾아보지는 않는다. 하긴 나도 보면서 메이네 배경이 중국인가 한국인가 싶었다. 이름표가 한국 이름으로 되어있거나 중간중간 한국어로 넣었길래 처음에는 한국 배경인 줄 착각했다. 쭉 보니까 중국식 사당, 여성 중심의 가정 문화 등을 보고 중국이 배경이란 걸 알았다. 주인공 메이 말고 메이 친구 세 명 중 한 명이 한국계라고 한다.

 

내 생각인데 (중국계 캐나다인이라는 게 걸리긴 하지만) 도미 시 감독은 그냥 전반적인 동양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극성인 모습, K-pop 아이돌(BTS 지민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문화 등... 그래도 역사 관련된 부분은 좀 더 신중히 공부하고 표현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일본과 중국 사이, 우리는 역사로 예민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고려양
고려 후기 원나라 간섭기 시절, 고려에 원나라 문화가 들어왔던 것처럼 원나라에도 고려 문화가 전파됐는데 의복, 음식 등 영향을 주었다. 그런 풍습을 고려양이라 부른다.

 

치명적인 귀여움

래서 판다(너구리 판다, 아기 판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에서 나오는 판다 종류는 래서 판다(Lesser panda)이다. 너구리 판다, 아기 판다라고 불린다. 실제 어떤 동물인지 찾아보니 곰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작다. 너구리처럼 보일 것 같긴 하다. 사진으로 찾아보니까 정말 귀엽다. 메이의 엄마가 변했을 때 엄청 컸던 래서 판다는 애니메이션이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예민할 나이 13세

극 중 메이의 나이는 13세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교 6학년 나이고 외국으로 따지면 중학생 때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시기다.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부모의 영향력보다 커질 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부모를 아예 무시하고 뒤로 하는 건 아니다. 메이처럼 부모님의 기대, 걱정과 같은 여러 심리를 다 간직하면서 산다. 심리적 독립의 시기가 찾아오는 거다. 혼자 스스로 해보려고 하고 삶을 이끌어 갈 준비를 하는 단계다. 누구나 그 시기는 처음 겪기 때문에 능숙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상황인 아이에게 다그치고 뭐라 하는 건 최악이다. 메이가 착해서 망정이지 메이 엄마처럼 행동했으면 다른 아이였을 경우 어긋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예민한 이성 간의 문제를 두고 당사자를 찾아가 떠벌리고 큰소리쳤다. 주변에 또래 아이들이 있어 따돌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메이 엄마의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보고 경악한 나머지 메이의 상상 장면인 줄 알았으나 실제 상황이었다. 나의 일로 입장 바꿔 생각하니 발끝부터 소름이 돋는다.

 

급변하는 심리의 표현을 래서 판다로

세상 귀여운 래서 판다를 13세 청소년의 급변하는 심리로 대변한 아이디어가 눈에 띄었다. 표현하기 어려울 법한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귀엽고 신선하게 나타냈다. 메이는 흥분하거나 열 받는 등 감정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판다로 변한다. 차분해지면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다. 집안 내력으로 메이네 여자들은 다 그런 시기를 겪는다. 윗세대는 전부 가정과 부모의 뜻에 맞추기 위하여 래서 판다를 포기 했다. 그 시기와 상황에는 모범적으로 살려면 여자가 자신의 모습과 뜻을 버리는 게 당연했기에 현재로 보면 안타까운 어른 세대의 과거를 비춰주는 장치로 표현이 잘 된 것 같다. 세상은 변했다. 정상적으로 성장할 때에 느끼는 감정은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자양분으로 인정받는 세대가 되었다. 메이는 발랄하고 심지어 자신의 인기를 끌어주는 판다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엄마와 할머니는 포기하라고 하지만 메이는 자신의 뜻을 선택한다.

 

나의 사춘기는?

나는 저 시기에, 성장하는 때에 그저 주변 뜻에 자신을 맞춰가지 않았나 싶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내 삶을 살긴 하지만, 보다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지긴 했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맞춰 사는 느낌이 강하다. 사회 속에 동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고 내 욕심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내 캐릭터마저 상실하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다. 사춘기를 사춘기답지 않게 보냈다는 게 예전에는 자부심이 컸는데 지금은 반대다. 그때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겪어볼 걸 그랬다. 20대에 와서도 학창 시절처럼 아무 생각 없이 보냈을 때가 많고 30대가 되어서야 다시 사춘기가 오는 느낌을 받았다. 다 때가 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나를 찾겠다고 미련 가지는 것보다 낫다. 음... 과연 사람은 세상과 분리해 100% 나의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나 있을까. 갑자기 철학적인 질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