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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동물농장 (조지 오웰) 책 독후감, 줄거리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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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어느 나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읽을수록 특정 나라와 인물이 생각난다. 역사 속에 수많은 독재자가 있지만, 특히 현대의 독재자들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종전이 되지 않은 휴전 국가인 상태다. 종전되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각 국가 권력자들의 기반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윗 지역의 소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과 정부는 더욱 자신들의 체제를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생각나기 쉬운 책이다. 하지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1945년에 출간한 책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나온 책으로 아직 한반도에서는 신탁통치로 인해 갈라지지도 않고 뚜렷하게 분열이 되기 전의 상황에 나왔다.

 

책이 나온 시기로 보면 스탈린 시대를 꼬집는다. 비유되는 동물과 사건도 그 시대와 일치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인간 존스), 마르크스(메이저), 스탈린(나폴레옹), 트로츠키(스노볼), 대숙청(동물학살), 연합군 침공(외양간 전투) 등 우화이지만 구체적으로 상황을 나타냈다.

 

처음 사회주의 발달은 평등을 외치는 것에서 시작했다. 차르와 귀족이 다스리던 제정 러시아의 말년은 끔찍했다. 농노들은 열심히 일해 생산하여 귀족과 차르의 배를 채우기 바빴다. 더이상 그걸 원치 않은 농노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신분제를 엎어버리고 소수 권력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처음의 뜻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새로 탄생한 소수 권력자는 권력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스탈린이다. 마르크스와 레닌 때의 혁명 목적은 무색해졌다. 공포 정치와 포악한 독재정치를 편 스탈린은 동물농장에서 돼지 나폴레옹의 모습과 몹시 흡사하다. 그의 아래 침묵하고 동조한 인물들이 권력에 편승했고 결국엔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규모로 커졌다. 냉전시대 때 공산주의 체제에 있던 국가 중 현재까지 이어지는 나라의 모습이 그렇다. (자신들은 부인하겠지만)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 이러한 모습이 뚜렷하다. 내부적으로만 독재의 흥미를 잃은 나라들인지 주변 국가들을 꾸준히 괴롭힌다. 아 그것도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겠구나.

 

이런 글을 쓴 저자가 ‘사회주의자’

보통 이런 글을 쓴 사람을 추측해보라고 하면 뼛속부터 자유주의자일 것 같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 동물농장의 저자는 사회주의자다.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주장을 했다. 어쩌면 ‘진짜’ 사회주의를 꿈꿨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는 권력이 다시 소수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걸 끔찍이 여겼다. 사회주의는 말 그대로 사회의 이익을 중시한다. 오해하기 쉬운데 그렇다고 집단이 무조건 개인의 자유와 언론을 묵살시키며 박살 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북유럽의 국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주의 발전을 통해 복지 국가의 체계를 마련했다. 처음 혁명가들은 소수의 권력, 소수의 부로 인해 차별이 생기고 신분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했다. 이로 인한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문제점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뿐이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장단점을 파악하기도 전에 소수 엘리트로 권력이 넘어가더니 독재자를 형성해버렸다. 초심은 사라지고 적폐만 남아버린 상황이다. 평등을 외치던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킨 후 소수의 돼지에게 지배당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답답함이 느껴진다.

 

 

내게 저런 상황이 닥쳐지면 과연 나는 다시 혁명을 일으키며 돼지들에게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감히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일제강점기 때를 상상하며 스스로 한 적이 있다. ‘과연 나는 일제의 억압을 이겨내고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면 절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내 옆의 사랑하는 사람,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는 움직여야 세상이 바뀔 수 있는 문제다. 정권의 거짓 선동에 의해 무의미한 희생을 해버린 멍청하리만큼 순진한 말 ‘복서’가 만약 풍차를 세우고자 열심히 일하는 대신, 힘쓰는 방향을 독재자를 몰아내는 데에 썼다면 어땠을까. 토론을 방해하는 ‘양들’과 ‘스퀼러’를 제거하고 온 동물이 인간 존스를 몰아냈을 때처럼 힘을 모았으면 어땠을까. 무지한 대중들을 동물로 표현한 것, 우두머리를 돼지로 설정한 것 모두 이 우화가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우리나라 현대 역사에서 보여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했다.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자를 몰아내고 그 이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데 노력하고 이뤄냈다. 러시아와 중국은 실패했고, 북한은 시도조차 못 하는 일을 우리나라는 해냈다. 이승만, 박정희 등 업적은 분명 있겠지만 끊임없이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전두환과 군부는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동물농장>의 무지한 동물들이 아니었다. 살벌하던 제국주의 일본의 밑에서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민족이다. 글을 몰라도 배우려고 했고, 진정한 자유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 많은 피와 땀으로 세워진 현재의 우리나라다. ‘헬조선’이라 현대 사람들은 욕하기도 하지만 다 애정이 있고 잘되고자 하는 마음에 비판하는 말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돼지 ‘나폴레옹’처럼 이런 흐름에 편승하여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자를 견제해야 한다. 이 우화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여기 있는 것 같다. 답을 알고 있지만 행하기 어려운 마음을 이해하는 그런 괴리감, 그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고 싶고 용기를 주고 싶지만 그러는 못하는 마음이 나의 답답함의 복잡한 요인으로 보인다. 왠지 그쪽 나라들에서는 이 책이 금서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