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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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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주는 힘

 

마지막. 마지막이 주는 힘이 있다. 마지막이기에 더욱 진솔한, 더 꾸밀 필요 없는 그러한 상황. 그런 상황을 올바른 정신으로 맞이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순간이 아닌 가만히 사색하며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또한 축복이다. 축복이 아니라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선생님처럼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건 내 개인적인 욕심이다. 죽음의 상황이 워낙 다양하기에 감히 예측할 수 없으나 깔끔하고 정갈한 내 상태를 기대해본다.

 

난 이어령 선생님을 이 책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초반엔 너무 김지수 작가가 오버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고 쓴 것처럼 격한 감정 표현을 쓴 부분이 내 가슴에 쉽게 와닿지 않았다.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너무 스승을 띄우나 싶었다. 하지만 이는 작가와 선생의 관계를 모르고 감히 겉으로 평가하려 했던 나의 오만이었다. 차분히 선생님의 말씀을 옆에서 듣는 듯한 자세로 읽었다. 나도 모르게 툭툭 가슴이 막히는 부분이 있고 반면에 깨우침을 얻는 구간에선 마음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마무리로 갈수록 김지수 작가가 겨우 이 정도로밖에 마음 표시를 못 했구나, 참 쓰기 어려웠겠다 느꼈다.

 

인상 깊은 모습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자세였다. 일반적인 부모라면 일찍 딸을 데려간 신을 원망할 법하다. 이성을 잃고 본능에 앞서 자신의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그래도 이해가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딸의 죽음을 맞이한 선생님은 오히려 죽음을 당당히 마주한 딸을 이해했다. 죽음으로 딸을 앗아간 신을 원망하는 것이 아닌 죽음과 신의 인과관계를 굳이 엮지 않았다. 그저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간 딸의 모습을 바라봤다. 물론 슬퍼했지만 슬픔의 농도와 받아들이는 가슴의 깊이가 달랐다. 감히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가슴의 영역이다.

 

 

‘시대의 지성’이라는 타이틀을 갖은 이어령 선생님은 말 자체가 철학이고 가르침이었다. 마지막을 앞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가르침에 몇몇 사람들은 반기를 들었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이 달라도 침묵할 수 있었다. 끝자락에 있는 사람이 주는 힘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위치서도 거짓을 뱉거나 쉽게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안 봐도 뻔하겠다. 이어령 선생님 말씀을 따라 그의 삶을 상상해보면 가끔은 누군가에게는 예민해서 진상이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당신 말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관찰력이 뛰어나고 감수성도 풍부했던 사람이다. 쉬이 무감각하게 이 사람 저 사람, 이곳저곳 휩쓸릴 사람이 아니란 게 그려진다. 풍파 속에 돛단배 같은 삶이라고 느껴지는 내가 보기엔 부럽기도 한 모습이다. 외로운 감정조차 부러워 보이는 끝없는 불안감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긍정적인 영향력과 삶의 지혜를 나눠줄 수 있을 정도의 지성과 지혜를 갖춘 사람으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호랑이 가죽 남기듯 멋진 말들을 남기고 간 이어령 선생님. 돌아가신 그곳에선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