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닌 나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하면 아직 히가시노 게이고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되어 히가시야마 아키라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나오키상 수상, 일본서점대상 수상 등으로 차기 일본 문학을 이끌 작가로 평이 좋다. 이번 작품 배경이 대만이다. 일본 사람이 대만의 역사와 배경을 어찌 이리 잘 아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대만 출생이다.
<줄거리 요약>
예치우성의 할아버지 예준린이 어느 날 손발이 묶인 채 자신의 가게 욕조에서 죽는다. 그 시체를 처음 예치우성이 발견한다. 장제스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뒤라 경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다. 가족도 시간이 지나 이 사건에 대해 손을 놓는다. 예치우성은 큰 충격을 받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어 가슴 한편에 묻어둔다.
<류>(流, 흐를 류)라는 제목처럼 예치우성의 인생은 흐르고 흐른다. 모범생이었던 그가 학교에서 사고치고 대학에 가지 못한다. 사랑을 만나지만 군대에 징병되고 결국 자신의 첫사랑은 이루지 못한 채 다른 사랑을 찾는다. 직업을 구하고 인생을 살다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과 역사 속 소설 내용>
역사 속 소설 내용이 빨간색 글씨
- 1927년, 제1차 국공내전[국민당(장제스) vs 공산당(마오쩌둥)]
-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인한 국공합작
1943년 8월 – 왕커창에 의해 예준린 부모, 형제 사망
1943년 9월 – 사허마을 학살사건(예준린이 왕커창 일가 학살) - 1945년, 일본 무조건 항복
- 1946년, 제2차 국공내전 발발
- 1948년, 화이하이 전투에서 공산당 승리
예준린이 전쟁터 쉬저우에서 도깨비불의 도움으로 겨우 생존
슈알후 대장의 아들 슈위우원을 구해 자신의 양아들로 삼음 - 1949년, 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장제스 대만으로 중화민국 정부 이전과 도피
예준린도 대만으로 넘어와 정착하고 포목점 개점 - 1975년 4월 5일, 장제스 사망
1975년 5월 20일 예준린 피살
<독후감 : 불편한 당위성>
역사 배경을 통한 이야기 전개, 작가의 필력 등 다양한 장점을 갖춘 작품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책을 덮었을 때 남은 찜찜함이 한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을 저번 달에 완독했으나 독후감을 지금 쓰는 이유는 이제야 정리됐기 때문이다. 아마 예치우성이 예준린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지 못하고 삶 한편에 두었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싶다. 예치우성이나 나나 결국 시간이 흘러 해결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나의 찜찜함은 이 책의 전반적으로 깔린 당위성 때문이었다. 전쟁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노인들의 대화 내용, 사허마을 방문 당시의 마을 사람들의 회고, 예치우성 삶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그저 그런 모든 이유 등. 다 나름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당위성이 자칫하면 본질을 흐리게 하고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감추기 쉬워 보였다.
이 책의 배경인 중화민국(대만)의 역사를 볼 때 시대 배경이 겹치는 우리나라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 중국이 분열되고 싸울 때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다. 위안부로 끌려가거나 군함도에 갔던 사람들, 강제 징용된 사람들 등 역사 속 피해자가 다수 존재한다. 자의 혹은 타의이던 시대의 피해자로 나는 본다.
이때의 당위성도 분명 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그저 그 시절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당위성의 불편한 이면이다. 하필 일본에서 극찬받는 작품이라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 당위성이 정서에 깔려있어 저렇게 나오는구나 싶어 더 답답하고 찜찜했다.
사연 없는 악역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연은 사연일 뿐 악역은 악역이고 악한 일은 악하다. 학살, 살인, 온갖 범죄들에 당위성을 부여하면 마블의 어벤저스들은 할 일이 없겠다. 우리 사회에는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고 시대의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온갖 당위성과 이유를 통해 굳이 이런저런 이해를 해가며 그들의 목소리를 누르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시대의 폭력은 이렇게 사소하게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된다면 분노할 의지조차 없어질 기분이다.
예준린은 자신의 죗값을 치를 준비가 되었는지 늘 모제르 총을 닦으며 그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예준린도 예전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최소한 악을 악으로 인지했다. 악은 당위성으로 가릴 수 없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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