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 적혀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모양이다. 자신들이 깔봤던 오랑캐가 자신들보다 강해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덤볐다가 된통 깨졌다. 그래서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수식어가 있는 듯하다.
체면 차리기 위해 자존심 부렸다가 체면은커녕 낯부끄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건 부지기수다. 꼭 성리학자뿐 아니다. 요즘 세대도 마찬가지다. 허세 부리는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현실 파악 못 하고, 굽히는 건지 겸손한 건지 구분 못 하고, 아니 가끔 굽히면 좀 어때?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지 말이다.
윗선으로 갈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딸린 식구들, 책임져야 할 존재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현실을 뒷전으로 미루고 이제까지의 관성과 자존심만 지키려다 보면 큰 사고를 친다. 자기만 다치는 게 아니고 모두가 피해를 본다. 역사 속 대표적인 예가 왕과 귀족이다. 가진 게 많은 이들이다 보니 지킬 게 많다. 재산, 체면, 지위, 자존심 등. 더 세부적인 예를 들자면 이 책의 배경, 병자호란이 있다.
일본이 쳐들어 와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지 채 30년도 지나지 않아 후금이 득세하여 명나라를 밀어내면서 조선 또한 위기가 찾아왔다. 관성대로 오랑캐가 득세하는 꼴을 볼 수가 없어 배척하자는 의견이 강했다. 그나마 전쟁의 아픔을 알았던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했지만 금방 미끄러져 내렸다. 인조반정 이후 자존심의 끝판왕들이 자리를 잡고 떵떵거렸다. 병자호란 이전의 정묘호란 때 대충 시국을 눈치채고 외교 정책을 펼쳤어야 했지만, 다가왔던 기회를 마지막 기회로 만들어버렸다.
알량한 자존심이 결국 가장 치욕스러운 결과를 만들었다. 조선의 기둥이었던 성리학자들은 체면과 명분이 제일 중요했다. 물론 임진왜란 때 대군을 보내어 도와줬던 명나라를 무조건 배신하는 게 맞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장 목에 칼을 들이미는 현실이라면 적당한 줄타기는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하긴 쉽다면 그렇게 했을까. 정치와 외교는 이래서 어려운 것 같다.
역사적 사건에 너무 감정이입 하다 보니 책 이야기를 빼놨다. 김훈 작가는 현장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읽는 내내 나 또한 포위된 채 남한산성에 갇혀있는 조정과 백성들 틈 안에서 조선의 아슬한 명줄 속에 같이 있는 기분이었다. 속상하면서 울화통 치미는 순간이 다수였다. 어쩔 수 없이 다 지나버린 역사지만 되돌려서 따발총 들고 가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럴 수 없으니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관심을 가진다. 아직도 한반도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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